부산 문탠게스트하우스 (2010)
제주에서 그을린 새까만 얼굴을 하고, 자외선을 잔뜩 받아 거칠어져 아무렇게나 잘라낸 헤어스타일, 집앞 슈퍼에 나가는 츄리닝 차림에 빨간색 백팩 하나 덜렁 맨 성별 불분명 출신 불분명의 묘령. 그게 나였다.
지랄같은 제주도 성산의 날씨만 보다가 부산에 도착하니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바다만 건너왔을 뿐 여기도 남쪽인데 이렇게 다른가? 찌는 태양에도 그저 행복해하며 해운대 달맞이 고개로 향했다. 부산에도 게스트하우스라는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여긴 제주의 그것과 수준이 달랐다. (지금은 멋진 게스트하우스가 넘쳐나지만 그 때만해도 시설 열악/ 분위기 훈훈 컨셉이 주를 이뤘으니)
검색을 통해 우연히 찾게 된 문탠게스트하우스는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고급빌라에, 말도 안되게 가정적이고 (진짜 가족이 사는 집이다) 깔끔하여 제주촌년에겐 컬쳐쇼크였다.
잘생긴 아들을 둔 부부가 안방에 살고 있다. 파란색 아들방은 내게 내주었고, 다른 두개 방은 원래 게스트를 위한 방이며, 넓다란 윗층 다락방은 비싼 값에 특별한 손님을 받는다. 다락방에서는 테라스로 나가 해운대를 내려다보며 파티를 즐길 수도 있겠지. 물론 2010년 7월의 이야기니 지금은 어떨는지 모르지만.
비가 온다는 핑계로 이곳 문탠게스트하우스에 콕 박혀 있었다. 사실 여행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냥 내 방식대로 편안히 쉴 수 있다면 그 뿐이었다.
털털하고 화끈한 성격이면서도 엄청 깔끔하게 청소하는 주인 언니는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나의 제주 생활을 궁금해했고, 사진을 보고싶어했고, 앞으로의 동향을 물었다. 예약 손님이 있어 내가 하루 밖에 묵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했고 꼭 다시 오라 해주었다. 얼마 뒤 추석에 안부문자를 하며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물으니 "너처럼 독특한 캐릭터는 절대 못 잊지^^" 해주어 가슴이 뜨거워졌다. 가을엔 해운대 불꽃놀이를 보러 가겠노라 한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했지만 꼭, 다시 찾을 곳.
[ 2012-02-15 코멘트 ]
문탠게스트하우스가 문 닫았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