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생애 처음 제주라는 섬에 발을 디딘 때는 원인 모를 혼란에 휩싸여 살아가던 201Q년,
정확히도 기억하는 날짜 3월 29일 저녁이었다.
끝이 보이는 연애를 하고 있었으며, 어디라도 좋으니 당장 혼자인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제주에 가보는게 어떻겠냐 제안한 건 그였다. 진심으로 나를 염려해준 것이리라.
오래 함께 일하던 분과 작별하듯 퇴사한 금요일, 토요일에 티켓팅을 하고 일요일엔 윈드브레이커를 구입했다.
3월 29일은 월요일이었다.
그 때 제주에 대해 주워들은 거라곤 '우도가 좋더더라' '올레길이라는게 있다더라' 정도였다.
칠흙같은 어둠 속 성산포에 내려져 우여곡절 끝에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고
다음 날 아침 타인으로부터 들은 첫 마디는 "여행 오래 하셨나봐요" 였다. "아.. 그래 보여요..? ^^;"
그 곳에 굉장히 익숙해보인다는 말을 해준 그녀(나보다 20살쯤 많은)와 함께 우도를 걸었다.
나의 제주는 그렇게 시작 되었다.
후에 다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주에 살러 가겠다며 내려간 곳이 바로 그 성산포,
그 게스트하우스 동네였다.
첫 제주여행이 5일 남짓 접어들었을 때, 여행자로부터 가파도라는 섬의 존재를 들었다.
그녀(또한 나보다 20살쯤 많은)는 섬 속의 섬을 여행하러 왔다고 했다.
가파도는 지금 청보리가 가득이라며 자랑하는 미소가 너무나 평온해보였다.
청보리 물결이 넘실대는 가파도에 가는 건 내게 숙원사업과도 같았다.
울고 싶을 만큼 바빴던 3월, 그리고 4월인 지금도 여전히 사무실에서 타이핑하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꼭 2년째 되는 봄날, 나는 가파도에 있었다.
보리의 모습을 하지 않은 어린 청보리 뿐이었지만, 그 초록은 내 안에 가득 들어왔다.
어쩌면 나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그녀들처럼 누군가에겐 여유롭게 웃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arch 2012 @ Je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