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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좋은 변화

kim.pro 2016. 9. 20. 18:54


4년여만에 두모악에 갔다.

2010년 처음 제주를 찾았을 때부터, 제주에 갈 때마다 거의 매번 의식적으로 두모악에 들렀다.
교통편이 불편한 곳이라 뚜벅이 여행자인 나는 삼달리 입구에서부터 20~30분을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그 길이 좋아 일부러 더 찾기도 했다.
두모악에 도착해서는 전시도 전시지만 폐교 속 정원이 좋아 그 안을 자꾸 맴맴 돌았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사람들에게 '두모악'이라고 하면 "그게 뭐야?", '김영갑 갤러리'라고 하면 "그게 어디야?" "좋아?" 하는 질문이 돌아왔었다.
그러나 좋은 것은 누구든 알아보는 법.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으론) 올레길의 유행과 함께, 두모악은 핫해졌다.


좋은 곳이니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언제까지고 그 모습 그대로이길 바랐던 두모악이 바뀌었다고 한다.
최근의 갑작스런 변화는 아니지만 워낙 오랜만에 찾은 터라 제주도민인 지인들이 "많이 바뀌어서 놀랄지도 몰라" 해서 조금은 걱정스런 마음이었다.




입구에서부터 확 달라진 변화의 시작은, 넓은 주차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맞은편 도로가 한켠에 아주 작지도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이게 주차장인가보다' 싶은 공간이 있었다.
당시 두모악 입구를 마주보고 왼 쪽에 수풀 우거진 길이 나 있었는데, 그 길을 열고 안 쪽 넓은 공터에 주차 공간을 만들었다.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졌으니 과거의 주차장은 턱없이 작았을 것이고 조용한 동네 좁은 도로가 시끌벅적 했을 것 같다.
관람객을 위해서도 주민을 위해서도 두모악을 위해서도 잘한 결정이라 생각했다.





다만, 이와 함께 두모악 입구가 바뀌었다.
옛날엔 도로가를 향해 나 있던 입구가 주차장과 이어진 골목 안으로 들어온 것.

덕분에 두모악 정원의 동선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입구에서부터 전시장으로 향하는 방향 자체가 달라지다보니 처음엔 이질감이 들었다.
하지만 둘러보니 풀과 나무와 돌, 길, 흙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다.




입구로 들어서 몇 걸음 안 가 꽃 피운 배롱나무가 보였다.

안그래도 보고 싶었다.
내가 스물여섯살이고 게스트하우스 스텝일 적, 게스트로 온 초등학교 교사와 함께 찾았을 때 배운 나무.
배롱나무라는 이름을 가졌고 간지럼 나무라고도 불리운다며 가지를 간지럽혀 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예전엔 일부러 정원 안으로 둘러보듯 들어가야 만날 수 있었다.





몇 번을 찾았어도 감나무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보슬비가 내려 풀 색도 향도 더 진해져 즐거운 마음으로 다녔다.
오픈 시간(9:30)보다 일찍 도착해 첫 손님으로 들어갔는데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꽤 많은 관람객이 들어왔다.





그리고 또 큰 변화는 무인찻집.

나무 문 드르륵 열고 들어가던 예전의 공간은 놔두고 (위 좌측)
옆에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왔다. (아래)





넓고 쾌적해졌다.

거부감은 없었다.
현판부터 의자, 컵, 방명록 등 예전의 물건이 그대로 이사왔다.
보수공사 한 옆집으로 이사한 느낌.





예전 공간에도 넓은 창이 있었지만 뷰가 훨씬 좋아졌다.
동행과 창 안에 있는 모습을 밖에서 찍고 싶어서 셀프타이머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ㅋㅋㅋ)





찻집 창 밖으로 보이는, 전시장의 뒷 쪽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관람객들이 다니는 동선은 주로 전시장과 무인찻집, 전시장과 입구 사이의 정원이라
일부러 가야 하는 전시장 뒷 쪽은 약간 사각지대다.
작은 공간이라 슥 걸으며 바람 구경이나 했다.





마지막 변화는 '전시장 내 사진 촬영 금지'였다.
별 생각없이 예전처럼 찰칵, 사진을 찍었는데 직원의 저지에 놀람 + 약간의 부끄러움에 이어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달라진 입구로 들어가 정원을 둘러보고 새 무인찻집에 있다가 전시장에 들어서기까지 변화를 받아들이며 안 그러려고해도 어리둥절의 연장이었다.
두모악 관계자들은 변화의 결정을 내리는 것부터 오랜 시간 공들여 조심스럽게 행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처럼 옛날 두모악을 기억하고 다시 찾은 관람객 중 일부가 두모악의 변화를 두고 "돈 좀 벌었네"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던진다고 들었다.

그럴리 없다고 믿으면서 나 역시 마음 한켠으론 두모악의 변화가 '관람객'을 위한 것인지 '관광객'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저울질 중이었나보다.
그런데 그 끝에 보란듯이 '관람객'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사진 하나하나를 기분좋게 음미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인간 본연의 심리다.
하지만 오래된 것은 그 오래됨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일상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뻐근해졌다.
두모악이 '갤러리'인지 '미술관'인지 혹은 '기념관'인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두모악은 그냥 두모악이라 결론 내렸다.





전시장 건물 옆 잔디밭은 그대로였다.
맑은 날 듣던 새 소리 대신 보슬보슬 비 소리가 좋은 날이었다.



2016. 8. 28.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www.dumoa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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