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201Q
아일랜드조르바 월정리, 그 후 본문
그녀들을 만난 건, 201Q년 5월의 어느 날. 어쩌다보니 제주에서 살고 있은지 한달즈음 됐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성산포 명물이 됐을 핑크트럭 옹달샘을 타고 달달달- 거리며 월정리 바닷가를 찾았다. "월정리에 카페가 있대" 지도도 정보도 없이 '해안가를 따라가다보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연두색 벽에 까만 글씨로 써있는 coffee를 발견했을 때, 묘한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바람도 하늘도 바다도 내음도 완벽한 날이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날이었다.
드디어 제주에서 파라다이스를 맞이하는구나 외친, 완벽한 날이었다.
세 사람이 쪼르르 서면 꽉 들어차는 창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뭐 그리도 신기했던지. 첫만남인 그녀들과 이야기 할 새도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귀로 들려오는 디야나언니의 고운 음성을 bgm삼아 파도소리를 베이스 삼아 그곳은 천국이었다.
그렇게 감동이었다. 물론 그 격한 감동은 '이미 제주에서 한달여를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조건인지도 모른다. '고운 음성의 여성'에게 극도로 약한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이유란 건 없었을지도 모른다.
- 사진 속의 언니들, 안 예쁘게 나왔지만. 첫 만남은 소중한 거니까, 첨부 :^/
창문을 통해 커피잔을 건네받아 돌아서면 너른 바다 앞이 모두 야외테이블이다.
제주의 바다는 동서남북 어딜가도 다 다르다. 색도 파도도 내음도 바람도, 장소에 따라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며 날씨에 따라, 동행자에 따라 다르다. 그러니 365일 어느 바다를 가든 새롭다. 하지만 그곳 월정리는 특히나 아름다웠다. 그 순간만큼은 지구상 어디에도 이보다 평화로운 view가 없을 것처럼.
그 날부터 난 매일 옹달샘의 선우언니를 졸랐다.
"월정리 가자" "몇 시에 문 닫을꺼야?" "오늘 가자며.." 입만 열면 조르바였다. 아유 쪼꼬만게 되게 졸라댄다고 언니도 장사 좀 하자고 성질이었지만 그 사이 언니는 새차까지 뽑아 일찍 장사접고 쪼꼬만 걸 옆에 태우고 해안도로를 몇 차례나 달렸다.
그 무렵 성산에서 월정리로 가는 해안도로에는 수국이 가득 피었고 여름이 무섭게 밀려왔으며,
내 젊은 날의 방황은 점차 극을 향해 갔다. 그 좋은 제주에 살면서 방에만 틀어박히는 날이 늘었고 말수도 웃음기도 줄었다. 머리 속을 메운 거미줄이 걷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땅 끝까지 떨어졌던 그 날도 조르바를 향해가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달랐고 혼자 말 없이 바다를 보고 앉았다.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다시 떠올려봐도 가슴이 먹먹해질만큼 거지 같았다. 그날 밤 많이 울었다.
고운 음성의 그녀들과는 서울에 올라와서 더 친해졌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 바다가 유독 든든했던 건, 창을 통해 나를 바라봐주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내가 바다를 향해 앉아 눈물 훔칠 때 나의 처진 어깨를. 어깨 너머 바다를.
처음부터 내게 월정리는 조르바였다. 그녀들이 있는 곳이 아일랜드 조르바. 아일랜드 조르바와 함께하는 바다가 파라다이스, 라는 아주 간단한 공식. 어디든 그녀들이 머무는 곳엔 커피향이 날 것 같으므로.
월정리에서의 생활을 접고 유랑을 떠난다고 했을 때, 그래서 많이 아쉽진 않았다. 아쉽다면 월정리의 조르바를 만나보지 못한 이들이 아쉽겠지, 난 이렇게나 아름다운 추억을 가졌는데. 다만 또 다시 사랑할 두 번째 아일랜드 조르바를 어서 만나고픈 마음이 간절할 뿐. 그 때는 열일 제치고 달려가 빨간 띠로 오픈식 해주고, 달 아래 바다에 젖어 풀문파티에 취해보고, 일랑이랑 같이 우뭇가사리 말리고 있을 해녀할망 주변을 서성이다가, 바비야언니 예쁜 손에 집착하며 사진 찍다가, 덥다며 카메라 내려놓고 바다에 들어가 눕고싶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8할이 손님 또는 여행객과의 잡담일테지.
그래도 좋다. 어서 만나요, 아일랜드 조르바.
▶ islandzorba cafe
'201X'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똥개 展 (8) | 2011.07.17 |
---|---|
굳바이 회기동 (8) | 2011.06.25 |
여주 신륵사 템플스테이 ; 緣 (10) | 2011.06.14 |
여주 신륵사 템플스테이 ; 천년고찰 신륵사 (8) | 2011.06.11 |
그림 꽃 (3) | 2011.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