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201Q
카모메식당에 비유되는 건 약간의 비약이라고 생각했다. 오징어가 될 것 같던 어느 7월, 창 밖에서 고개밀고 기웃거리는 행인을 보고 알았다. 핀란드 할머니 셋처럼 "계피롤 주세요" 하며 들어올 거라는 걸. 선택의 여지없는 하우스 와인 한잔이 딱 좋다. 꼭 좋은 사람과 함께. S/S 2011 @ seoul
네모네모한 사진을 좋아한다. 입체가 천재라면 네모는 올곧음이라 믿고 싶다. 통의동이 그렇다. 서울에 몇 개의 홈그라운드 격 동네가 있지만 통의동을 만난 건 올해가 처음. 그리고 뻔질나게도 드나들었다. 이번 주 다음 주 그 다음 주 그 다다다음 주 그렇게 몇 번. 어귀의 목화식당은 벌써 메뉴의 1/3을 먹어본 기분. 이제 종로구는 집에서 머나먼 동네가 되었지만 어쩐지 얼마 안 가 또 가게 될 것 같은 꺼리가 생겼다. 그 때 이 녀석을 다시 만난다면 몹시 반가웁겠다. July 2011 @ seoul
때는 바야흐로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하던 고등학생 시절.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집 지하에 새끼고양이가 울고 있어. 와서 데리고 갈래?" 이미 밤이었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하는 친구네 집. 어두컴컴한 지하 보이지도 않는 구석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작은 아가를 구출했다. 꼭 갖고 싶던 짙은 회색 줄무늬를 가진 바짝 마른 아가였다. '마로'라고 이름 붙여줬다. 배가 고픈 건지 아픈 건지 마로는 힘없이 울고 있었다. 불안해하지 않게 꼭 안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며 "내일 꼭 병원에 데려가줄께" 했다. 가난한 고등학생이었다. 집에 와서도 마로는 쉼없이 울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집에 '범띠'가 들어오는 것과 같다며 싫어하던 아빠도 마로를 가여워하며 약이 될 만한 것을 먹..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전시를 하루에 연달아 관람하는 건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 중 하나. 하지만 어찌보면 꼭 다르지만도 않다. 하나, 내가 흥미로워 한다는 점에서 같고. 둘, 결국은 '소통'을 담는다는 점에서 같다. 한낮엔 유르겐텔러 늦은 낮엔 오철만이었던 여름 한 자락. 워낙 유명한 전시인데다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볼 사람은 다 보지 않았나 싶다. 매일 트위터로 대림미술관 소식을 접하지만 시간을 쪼갤 수 없어 전전긍긍하던 나날들.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아서인지 관람객이 매우 많았다. 그래도 '작품이 사람 구경'할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 전시 끝나기 전에라도 시간을 쪼갤 수 있었으니 다행. 빅토리아 베컴에게 상자에 쳐박혀 다리만 내놓으라고 한 유르겐텔러는 사진 보정을 전혀 하지 않는단다. 우리는 가진 ..
홍대 i think so 매장에서 이 민트색 책을 처음 만나던 때를 기억한다. 사실 그 시기엔 일부러 여행 책을 멀리하고 있었다. 고작 삼개월 남짓 떠나있던게 뭐 그리 대수라고, 돌아와 현실에 적응하며 사는 일이 꽤 만만치 않았다. 별거 아닌 문장에도 울컥 뜨거운게 올라와 출근길 지하철에서 민망하게 눈물 훔치고부터는 의식적으로 멀리한 것. 그리고 자기계발, 경영, 마케팅, 웹 관련 서적만 줄줄이 읽어내길 수 개월. 넘쳐나는 여행 에세이 사이에서 저 혼자 의젓했다. 으레 담길 법한 응석과 투정없는 사진이 그랬고 문장이 그랬다. 이병률 '끌림' 이후로 몇 년만에 처음 마음에 들어온 여행 에세이, 오철만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만난다면' 천천히 아껴 읽고 있다. 아직도 마지막 장을 만나지 않은 채 침대 ..
Prologue. 오프라인이건 온라인이건 '내 집'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일년 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전시를 온라인 집에 펼치노니, 이름하야 제주는 개판이다. 한집 건너 한집 꼬리 흔드는 똥개를 만날 수 있다. 개랑 놀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저무는 동네에서 담은 소중한 컷들. (다만, 혈통있는 개도 싸잡아 똥개로 통칭함) [ 왔어? ] April 2010 @ 한림 [ 왔어요? ] July 2010 @ 서귀포 [ 여기 개 있어요 ] March 2010 @ 우도 [ 대한의 똥개 ] March 2010 @ 우도 [ 억울한 똥개 ] March 2010 @ 우도 [ 한가한 똥개 ] April 2010 @ 성산 [ 늠름한 똥개 ] April 2010 @ 대정 [ 발랄한 똥개 ] March 2010 ..
태어나 처음 내 손으로 '전입신고' 라는 걸 해본 곳 회기동. 순전히 집이 깨끗하다는 이유만으로 계약하여 동네의 성격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살다보니 회기동엔 70%가 대학생, 그 중 20% 정도는 외국인이고 지나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젊은이였다. 그리고 인구의 절반 이상이 '월세' 사는 동네. 꼬맹이 대학생들 욕하는 소리 하며, 중국어부터 온갖 외국어가 심심찮게 들리는 출퇴근길. 애초에 오래 살지 않겠다며 정 붙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이사를 결정하고나니 꽤 매력적인 동네더라. 10개월동안 내 스타일의 떡볶이 파는 곳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쿨하게 떠나준다) june 2011 @ seoul
그녀들을 만난 건, 201Q년 5월의 어느 날. 어쩌다보니 제주에서 살고 있은지 한달즈음 됐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성산포 명물이 됐을 핑크트럭 옹달샘을 타고 달달달- 거리며 월정리 바닷가를 찾았다. "월정리에 카페가 있대" 지도도 정보도 없이 '해안가를 따라가다보면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연두색 벽에 까만 글씨로 써있는 coffee를 발견했을 때, 묘한 두근거림을 잊을 수 없다. 바람도 하늘도 바다도 내음도 완벽한 날이었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한 날이었다. 드디어 제주에서 파라다이스를 맞이하는구나 외친, 완벽한 날이었다. 세 사람이 쪼르르 서면 꽉 들어차는 창문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뭐 그리도 신기했던지. 첫만남인 그녀들과 이야기 할 새도 없이 셔터를 눌..
여주에서 가까운 이천에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묘가 있다. 차가 있다면 그곳에 들러 반나절쯤 누워 하늘 보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나 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낀 아쉬움 만큼 노친네들도 날 그리워했을까. 아빠한테 신륵사에 템플스테이 갈꺼야, 하니까 "가서 불공 열심히 드려라" 하신다. 12년 전 할아버지 할머니 49제를 지냈던 절이란다. 오래 됐으니 이름이 남아있진 않을거라고, 계신 곳 향해서 절 올리라고. 예상했던대로, '경험삼아 템플스테이'가 아니었다. 겸허한 마음으로, 설렘 요만큼 얹어 떠나기. 토요일, 여주행 고속버스. 두시간 넘게 걸린다며 화장실 다녀오라는 기사님 말씀. 당초 1시간 10분의 예상 소요시간은 철저히 빗나갔다. 낯선 지역에 내려져 처음 만나는 풍경은 늘 마음을 당긴다. 같은 한국땅 ..